학교폭력은 더 이상 일부 학생의 일탈로 치부될 수 없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매년 예방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미미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매년 반복되는 영상 시청과 형식적인 캠페인이 과연 학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피해자는 늘고 가해자는 어려서 이해받고, 교사는 중재자로서 한계를 느끼는 가운데 학교폭력 예방교육은 본래의 목적을 얼마나 실현하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예방교육의 현황과 문제점, 현장 교사의 목소리, 그리고 보다 실효성 있는 대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예방교육은 매년 진행되지만 문제는 줄지 않는다
학교폭력 예방교육은 법률로 의무화되어 있는 교육 활동이다. 초중고 모든 학교에서는 학기마다 일정 시수 이상의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교육 내용도 지속적으로 보완되고 있다. 교육부는 각 시도교육청과 함께 관련 자료를 개발하고 학교에 배포하며, 학교는 이를 활용해 수업을 구성하거나 외부 강사를 초청해 강의를 진행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체험형 프로그램이나 역할극 수업을 도입하며 기존의 일방적인 전달 방식을 보완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학교폭력 발생률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으며, 학생과 교사 모두 교육의 효과를 실감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예방교육의 내용은 대체로 유사하다. 학교폭력의 정의와 유형을 소개하고, 관련 법령이나 처벌 수위를 안내한 뒤 사례 중심의 영상을 시청하는 식의 방식이 주를 이룬다. 교육은 대부분 1회성으로 이루어지며, 학급 담임 교사가 자료를 내려받아 진행하거나 외부 강사가 방문하여 수업을 맡는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학생의 내면에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수동적이라는 점이다. 영상 시청이나 강의는 일시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학생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지속적인 피드백과 내면화의 과정이 부재한 경우가 많다.
학생들도 예방교육을 ‘매년 똑같은 이야기’라고 인식하고 있다. 일부 학생은 교육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 형식적인 절차로 치부하며, 오히려 내용 속에 등장하는 폭력 장면이나 사례에 무감각해지는 경향도 나타난다. 또한 학교폭력에 대한 정의나 범주가 너무 포괄적으로 제시되어,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가벼운 장난조차 처벌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교육이 실제 생활과 동떨어져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예방교육은 오히려 학생의 반감과 냉소를 초래하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러한 교육 방식의 한계는 교사들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예방교육은 행정적으로는 의무이고 이수 결과를 보고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교사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수업 시간 외 별도 시수를 확보하기 어렵고, 준비와 운영은 모두 담임 교사의 책임으로 떠넘겨지는 경우가 많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기 초에 집중적으로 교육을 몰아서 실시한 뒤 이후에는 관련 활동을 중단하는 등 교육이 일회성 행사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처럼 학교폭력 예방교육은 매년 반복되지만,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교육의 본질적 의미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2. 현장 교사와 학생이 느끼는 교육의 간극
예방교육의 효과를 묻는 질문에 대해 현장 교사들은 대체로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명확하게 효과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느끼는 사례 역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교사는 교육 이후 잠시 동안 학생들이 조심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평가한다. 교육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특히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만 교육이 강화되는 ‘사후 대응’ 중심의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교사들은 또한 학생 간 갈등이나 장난의 경계를 가늠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학생들의 언어폭력이나 사이버폭력은 점점 더 은밀하고 복잡해지고 있으며, 피해자 스스로조차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예방교육이 표면적인 유형 소개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학생 간 관계 속에서 어떤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단순한 정의 전달이나 법률적 설명보다 관계 교육이나 감정 이해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생들 역시 예방교육을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받아들이고 있으며, 스스로를 교육의 대상이라기보다 통제의 대상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특히 중고등학생은 성찰이나 공감보다는 피드백 없는 정보 전달식 수업에 지루함을 느끼며, 일부는 폭력의 사례나 징계 수위를 단순히 ‘위험 요소’로 인식하는 데 그치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은 교육의 목표가 ‘다시는 하지 말자’가 아니라 ‘들키지 않게 하자’로 왜곡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학교폭력 예방교육이 처벌 중심으로 기획될 경우, 학생은 감정과 상황을 공유하지 않고 은폐하거나 외면하려는 태도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관계 회복이나 갈등 중재에 필요한 시간과 역량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도 문제다. 담임교사는 수업과 행정, 상담 업무까지 병행하고 있으며, 갈등이 발생했을 때도 실질적인 해결 권한이나 시간은 제한적이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나 관련 법령의 개입 이전에 교사 수준에서 충분한 예방과 중재가 가능하려면 제도적 지원과 협업 체계가 마련되어야 하지만, 현재는 예방교육조차 교사 개인의 재량과 책임에 맡겨진 실정이다. 이로 인해 교사들은 교육의 질적 내실보다는 형식적 운영에 집중하게 되고, 이는 교육이 일관되게 작동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3. 실효성 있는 예방교육을 위한 방향
학교폭력 예방교육이 진정한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형식적 시청각 수업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의 삶과 감정을 중심에 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 교육의 내용과 방식 모두에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로는 교육의 반복성과 일관성을 확보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단기적 일회성 교육이 아닌, 연중 지속적이고 단계적인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학년별 발달단계에 맞는 교육 내용이 체계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초등 저학년은 감정 표현과 갈등 해결 중심, 중고등학생은 공동체 의식과 공감 능력 강화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관계 중심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학교폭력은 단지 법적 문제로만 접근할 수 없으며, 대부분 친구 관계의 갈등과 오해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학생이 안전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을 교육과정 속에서 반복적으로 쌓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토론 중심 수업, 역할극, 공동 프로젝트 수업 등이 효과적일 수 있으며, 교사와 학생이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가는 수평적 교육 구조가 요구된다. 감정과 관계를 다루는 교육은 교사의 역량도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교사 연수 프로그램 역시 기존의 이론 중심에서 사례와 실습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셋째, 학교 차원의 통합적 대응이 필요하다. 예방교육은 단지 담임교사의 책임이 아니라, 학교 전체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점검해야 할 영역이다. 교사뿐 아니라 행정실, 상담실, 학부모회 등과의 연계가 중요하며, 학생 자치회와의 협업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캠페인이나 정책은 학생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주체적 태도와 공동체 의식을 키울 수 있다. 또한 교육청 차원의 지원도 확대되어야 하며, 일선 학교에 전문가 파견이나 교육 프로그램 개발 지원 등이 지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방교육이 처벌 회피가 아닌 관계 회복을 위한 수단임을 학생과 교사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학교폭력은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 자라나며, 예방교육은 그 무관심을 깰 수 있는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피상적인 정보가 아닌,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단지 몇 시간의 수업이 아닌 학교문화 자체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신뢰와 존중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속에서만 학교폭력은 줄어들 수 있으며, 교육은 그 공동체의 중심에서 작동해야 한다.
학교폭력 예방교육은 분명히 중요한 교육 활동이다. 그러나 지금의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형식적 운영에서 벗어나 학생의 삶과 관계를 중심으로 구성된 교육, 그리고 학교 전체가 참여하는 통합적 예방 시스템이 필요하다. 교육은 일시적인 행동 통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과 변화의 과정을 지원해야 하며, 학교폭력 예방교육 역시 그 철학 위에 설계되어야 한다. 지금은 수업의 횟수가 아니라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